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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화한 품격과 형님 리더십의 수원FC 김도균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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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화한 품격과 형님 리더십의 수원FC 김도균 감독

“잊혀진 한국축구의 젊은 유망주. 감독이 되어 다시 돌아오다.”


정면사진.jpg


생년월일: 1977년 1월 13일, 경북 영덕

 

<학력>

안동고-울산대-경희대학교 대학원 석사

 

<선수경력>

U-20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대표(1996-1997)

프로축구 K리그 울산 현대 호랑이(1999~2004)

제12회 AFC 아시안컵 국가대표(2000.7)

제27회 시드니 올림픽 축구 국가대표(2000.9)

일본프로축구 J리그 교토 퍼플상가(2004.1~2005.1)

K리그 성남일화 천마(2005.1~2005.8)

K리그 전남 드래곤즈(2005.8~2006.12)

 

<수상>

 U-20 아시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MVP(1996)

베트남 던힐컵 국제대회 MVP(1999)

AFC 아시아 베스트 일레븐 선정(1999)

 

<지도자 경력>

서남대학교 축구부 코치(2007.1~2009.12)

울산 현대 호랑이 축구단 U-15 유소년팀 감독(2009.12~2013)

울산현대 축구단 코치(2013)

울산현대 축구단 코치&유스팀 총괄디렉터(2015~2019)

現)수원FC 감독


“선수 김도균은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감독 김도균의 축구는 확실히 보여줄 겁니다.” 

청소년대표팀과 올림픽대표팀 주장으로 22세의 나이에 국가대표 승선. 1999년 AFC 아시아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며 아시아축구연맹으로부터 ‘한국축구의 차세대 대들보’라는 극찬을 

받았던 선수. 바로 수원FC 김도균 감독의 현역시절 이야기다. 그는 축구선수로서는 엘리트 

코스를 밟았던 젊은 유망주로 ‘한국축구의 미래’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성장과 기회의 길목에서 번번이 발목을 잡은 부상과 불운으로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한 채 2006년 K리그 전남 드래곤즈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그런 그가 프로팀 감독으로 

돌아왔다. 프로 ‘초보 감독’ 이지만 젊은 감독다운 패기와 자신만의 색깔로 팬들이 즐거워하는 

‘빠르고 공격적인 축구’를 선언하며 시즌 개막을 준비하는 김도균 감독을 만났다. 


입단 사진.jpg


승격에 목마른 수원의 손을 잡다

김도균 감독이 이끄는 수원FC는 2013년 프로축구에 ‘승강제’가 도입되며 2부리그인 K리그2에서 

시작하여 2015년 처음으로 1부리그 승격의 기쁨을 맛봤다. 하지만, 1부리그의 벽은 높았고 한 시즌 

만에 다시 2부로 강등되었다. 급기야 작년 연속된 부진으로 8위까지 추락하며 결국 수원FC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김도균 감독을 팀의 수장으로 선택했다. 그는 팀을 맡은 후 기존의 선수들을 바꾸고 

새로운 선수들을 대거 영입하며 ‘사실상 새로운 팀’을 구성했다.

 

대부분의 감독이 계약 기간 승리에 집착한 나머지 수비 지향적으로 경기를 풀어가고 볼을 돌린다. 

그만큼 관중들이 즐길 수 있는 경기의 질이 떨어진다. 하지만, 김 감독은 구단과 계약한 2년 동안 

적극적인 압박과 빠른 템포의 축구를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축구를 보여줄 수 

있다면 성적과 재미도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는 지론이다.

 

“계약 기간 내에 김도균이라는 감독이 어떤 축구를 하는지 보여주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지키는 

축구로 경기를 루즈하게 하면 관중들이 다음에 경기장을 찾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요. 

첫째는, 저만의 스타일의 경기를 하는 것이고 그다음은 관중들이 눈을 못 떼고 볼 수 있는 빠른 

경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선수시절1.jpg


화려했던 대표팀 시절과 잊을 수 없었던 ‘쿠칭의 악몽’

김도균 감독은 선수 시절 그라운드의 스타였다. 청소년, 올림픽대표팀에서 

‘중원의 조율사’로 팀에 없어서는 안 될 다재다능한 미드필더였고 22세의 나이로 

국가대표에 승선했다. 게다가 큰 키에 수려하고 잘생긴 외모까지 더해 수많은 

소녀 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오빠 부대를 몰고 다닌 선수 시절을 묻자 

그는 “이제는 옛날 이야기다. 아재가 되었다.”라며 멋쩍게 웃는다.

 

그러나 화려함 못지않은 쓰라린 기억도 있다. 김 감독은 1997년 말레이시아 

쿠칭에서 열린 U-20 세계선수권대회에 이관우, 박진섭, 안효연, 양현정, 심재원 등의 

쟁쟁한 선수들과 함께 황금세대로 주목받으며 출전했다.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남아공, 프랑스, 브라질과 함께 ‘죽음의 조’에 속했지만 대회 직전 가나, 아르헨티나와 

평가전에서 각각 3-1, 1-1로 선전하며 기대감도 높았다.

 

그러나 첫 경기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최약체이자 반드시 1승을 따내야 할 남아공을 

시종일관 몰아붙였지만 골 운이 따르지 않아 0-0으로 비긴 것이다. 1승만 해도 조3위 

와일드카드로 토너먼트를 노려볼 수 있었지만, 다음 상대가 프랑스, 브라질이라 

어린 선수들의 심적 부담감은 막중했다.

 

결국, 티에리 앙리(2골)와 다비드 트레제게(2골)가 이끄는 프랑스에 2-4, 스트라이커 

아다일톤에게 한 경기 최다인 6골을 내주고 브라질에 3-10으로 패하며 ‘쿠칭의 악몽’이라는 

오명을 쓴 채 돌아와야 했다. 당시의 상황에 대해 김 감독은 선수들 개개인의 기량뿐 

아니라 팀 전술, 전략 등 모든 것이 부족했었다고 말한다.

 

“남아공은 그나마 개인 기량으로 한번 해볼 만했고 이길 수 있던 상대였거든요. 

그런데 첫 게임에서 그런 부분들이 이뤄지지 않았기에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자신감도 떨어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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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된 부상과 불운으로 피우지 못한 선수 시절의 꽃

청소년대표 이후, 김 감독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대표팀에서도 주장으로 팀의 

중심을 맡는다. 그뿐 아니라 세대교체를 위해 아시안컵 대표팀에도 선발되며 한국축구의 

미래로 주목받게 된다. 2002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탄탄대로의 앞날이 기대되었지만, 

대표팀과 소속팀에서 예측 못 한 상황을 맞이하며 불운을 겪게 된다.

 

그 무렵 대표팀에 허정무 감독이 사퇴하고 히딩크 감독이 온 것이다. 코치들은 그대로였지만, 

대표팀 선수를 새롭게 선발하는 과정이 시작되었고 김 감독 또한 재평가를 받아야 했다. 

예고 없이 그의 소속팀 경기를 보러온 코치들 앞에서 그는 소속팀 사정으로 자신의 

전문 포지션인 미드필더가 아닌 사이드백(수비)으로 뛰고 있었다. 코치들은 미드필더를 

선발하러 온 상황이라 할 수 없이 돌아갔다. 코치들은 미련을 가진 채 한 번 더 기대를 하고 

찾아왔지만, 똑같은 상황이 반복된 채 기회가 무산됐다. 그는 “아직도 코치님들이 저를 만나면 

”너 진짜 운이 없다. 내가 두 번을 보러 갔는데 왜 그 자리를 봤느냐“고 말씀하세요.”라며 

털털하게 웃는다.

 

대표팀에 선발되진 못했지만, 그는 소속팀 울산현대에서 서서히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2004년 박지성 선수가 뛰었던 일본프로축구 교토퍼플상가(현 교토상가FC)로 이적하게 된다. 

당시 발목 부상을 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경기 영상을 본 교토의 관계자들은 그를 

선택했다.

 

“교토에서는 수비수를 찾고 있었거든요. 수비수 한 명과 저의 플레이가 담긴 영상을 봤는데 

저를 뽑겠다고 했어요. 전문수비수가 아닌 데다 부상까지 안고 있음에도 뽑아줘서 고마웠죠.”

 

부상이 회복되고 게임을 뛰기 시작하며 그는 교토의 미드필더로서 팀의 기대에 부응하게 

되었다. 그런데 또 한 번의 불운이 시작된다. 발목 삼각 인대가 끊어지는 부상과 함께 자신을 

지지해주던 감독이 교체되며 팀을 나오게 된다. 이후 K리그로 돌아온 김도균 감독은 국가대표 


시절 사제로 지낸 허정무 감독이 맡고 있던 전남 드래곤즈로 오게 되었으나 동계훈련을 마친 뒤 

무릎 상태가 악화되어 1년 사이 3번이나 수술을 하게 된다. “고민을 하다가 이 무릎으로는 운동을 

계속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2006년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했습니다.”


정면사진 2.JPG

  

대기만성형 선수에서 이제는 감독으로

일찍 국가대표에 선발되어 남다른 선수 생활을 해온 김 감독이었지만, 스스로는 항상 

대기만성형의 선수였다고 되돌아본다. “학창시절 저보다 축구를 일찍 시작하고 잘하는 

친구들도 많았어요. 그런데 학교 동기 중에 프로까지 온 선수는 저밖에 없었죠. 대표팀 역시 

마찬가지예요. 처음에는 주전도 아니었고 항상 뒤에서 시작했지만, 노력해서 인정받았을 때 

스스로 잘했다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죠.”

 

코로나 19로 프로축구 개막이 무기한 연기되었지만, 김도균 감독은 올해 정규시즌 2위라는 

큰 포부를 밝혔다. 감독 김도균이 보여줄 수 있는 축구를 위한 목표로 설정했다고 한다

우리 관중과 팬들이 즐길 수 있는 축구를 가장 먼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많이 찾아주셔서 

응원하고 격려해 주시면 작년 수원FC의 아쉬웠던 점을 충분히 보완해서 좋은 성적으로 

보답드리겠습니다.”

 

선수 시절 자신의 재능과 실력을 꽃피우지 못한 채 아쉬움을 남겼던 김도균 감독. 하지만

그 아쉬움이 감독 김도균으로서 새로운 꽃을 피워 나가는데 밑거름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서아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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