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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치는 관계에서 스미는 관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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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치는 관계에서 스미는 관계로”

시간과 공간을 통해 진정한 관계속으로


이인희 교장.jpg


어느 가을 밤 22개월 된 어린 딸아이와 함께 산책을 하다가 기어 다니는 큰 개미 한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개미에 대한 실물 학습의 기회가 될 것 같아 아이의 손을 끌고 개미가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개미를 발견한 딸아이는 저의 기대와는 달리 서슴없이 발로 개미를 짓밟는 것이었습니다.

 

이 행위로 인해 인간의 잔인성과 폭력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생명에 대한 인간의 잔인성은 환경에 의해 학습되었다기보다는 본능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적지 않은 충격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실망감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저는 자녀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교육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는 먼저 생물을 단지 보는 대상의 차원이 아니라 만지고 느끼게 하여 생명에 대한 의미를 깨닫게 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며칠 후 다시 산책을 하다가 길가에 기어 다니고 있는 땅강아지 한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생명의 의미를 학습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 같아 땅강아지를 잡아서 자녀가 느낄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무서워하는 듯 했으나 이내 땅강아지에 대해 궁금한 것들을 이것저것을 묻고 나중에는 살며시 만지며 좋아하는 모습까지 보였습니다. 딸아이는 땅강아지를 가지고 한참동안 놀고 난 후 다시 땅강아지를 땅에 놓아주었습니다.

 

그 후 딸아이는 산책만 나오면 계속 땅만 쳐다보며 땅강아지를 찾곤 했습니다. 그러던 중 딸아이는 차에 깔려 죽어 있는 땅강아지 한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왜 이 땅강아지는 땅에 누워있냐고?”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무심코 차가 땅강아지를 밟아서 죽은 거지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다음 날 저녁 딸아이와 산책을 하는데 갑자기 아이가 까치발을 딛고 걷기 시작했습니다. 딸아이가 부자연스러운 모습으로 계속 걸고 있기에 왜 그렇게 걷느냐고묻자 아이는 땅강아지를 밟지 않기 위해서요.”라고 말했습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지나가던 벌레를 주저하지 않고 발로 밟고 다녔던 아이가 왜 이렇게 달라졌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큰 벌레와 작은 벌레와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 부자연스러운 행동이 땅강아지가 죽어 있던 그 장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기에 단순히 크기의 차이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 원인에 대해 한참을 고민하다가 딸아이가 개미는 죽이고, 땅강아지에 대해서는 이상한 행동을 취했던 것은 개미와의 관계는 당구공과 같은 스치는 관계였던 반면에 땅강아지와의 관계는 의미 있는 스미는 관계였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딸아이는 땅강아지와는 의도적인 시간을 가지면서 그 속에서 땅강아지와 자신과의 의미를 발견했던 것입니다. 땅강아지와 함께 놀고 자신의 시간을 허비했던 것이 사람을 잔혹성에서 온유함으로, 폭력성에서 비()폭력성으로 변화시켰던 것입니다.

 

이 시대에 큰 문제 중 하나는 관계의 부재입니다. 사기와 절도, 전쟁과 살인 등과 같은 잔인성과 폭력성은 모두 관계가 무르익지 않은 데 있습니다. 인간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때 시간이란 단순히 물리적 시간뿐 아니라 타인의 삶 속에서 나의 존재의 고리를 발견하는 공감적 시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 타인의 삶을 내 삶으로 초대하는 것이며 내 삶을 타인의 삶 속에 내어주는 것입니다. 온전한 인간관계는 이렇게 자신의 물리적인 시간을 기꺼이 타인을 위해 소비하고 더 나아가 내 공간을 다른 사람에게 내어줄 때 우리 안에 살기와 폭력성은 제거될 수 있습니다.

 

대부분 학교폭력의 이유 역시 스미는 관계가 아니라 스치는 만남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자신의 시간과 공간을 내어주는 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오직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에 대해서만 배웠습니다.

 

학생들은 친구들을 위해 시간을 보내고 함께 밥을 먹으며 함께 놀면서 스미는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직 자신의 목적과 자아 성취를 위해 온통 자신만을 위해 시간을 소비하다보니 스미는 관계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유일한 이유는 인간과 스미는 관계를 맺기 위함입니다. 그분은 우연적이고 일시적 관계가 아닌 의도적이고 영원한 관계를 맺고자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시간을 소비하셨고 그분의 공간을 기꺼이 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시간과 공간을 내어 주셨기에 우리는 예수님과의 온전한 관계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동일하게 힘들어 하는 친구를 위해 시간과 공간을 내어줄 때 우리는 진정한 관계 속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지금 주변에 힘들어 하는 친구가 보이거나 평소 소원했던 친구가 있다면 이제라도 스미는 관계를 맺기 위해 자신의 시간과 공간을 거룩하게 낭비해 보실 것을 제안합니다. 그것이 단지 밥을 한 끼 먹는다든지 고민을 들어준다든지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소중한 시간과 공간을 내어주기 시작할 때 스치는 관계 속에서 느끼지 못했던 더 소중한 스미는 관계의 기쁨을 깨닫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와 관계를 맺기 위해 오신 예수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__2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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