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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성보 전투의 어재연 장군과 수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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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성보 전투의 어재연 장군과 수자기

외세의 침입으로부터 우리 민족의 얼이 담긴 상징


어재연 장군.jpg

              어재연 장군(1823~1871)


1871(고종 8) 미국은 조선을 개항시키기 위해 그해 516일 군함 5척에 

12백여명의 병력을 태우고 조선 원정에 나섰다. 무작정 개항을 요구할 순 

없었기에 빌미를 얻을 명분이 필요했다


그렇게 미군은 서울로 가는 수로인 강화해협에 일방적으로 진입을 했다.

이를 지켜본 조선 수군은 경고로서 포격을 발포했다. 미군은 기다렸다는 듯이 

빌미로 조선에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협상은 결렬될 수 밖에 없었고 미군은 

610일 함포사격으로 초지진을 초토화시킨 뒤 초지진과 덕진진을 점령했다.

 

이에 어재연 장군은 600명의 군사로 맞섰고 수중의 무기는 서양의 무기에 비하면 

아주 구식이어서 화력도 약했다. 미군이 해상과 육상 두 곳에서 함포와 야포로 

중무장하고 총공세를 취하며 진격해 왔다. 어재연 장군은 수자기

(진중 뜰에 세우던 대장의 군기)를 단 후 최후까지 목숨을 다해 응전한다


전투는 아주 치열했다. 총알을 막기 위해 갑옷 속에 일곱 겹의 솜옷을 껴입은 채 

분전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양손에 대포알 10여개를 쥐고 적군에 던지며 끝까지 

항전하다 동생 어재순과 함께 장렬히 전사한다. 이 광성보 전투에서 미군은 

3명이 전사, 10명이 부상 당했지만, 화력에서 열세였던 조선군은 350명의 전사자와 

20명의 부상자가 기록되었다고 전한다. 이 전투에서 어재연 장군의 수자기가 미군 

손에 넘어가게 되었다.

 

미해군 사관학교에 전시되어 있던 어재연 장군의 수자기는 현재 우리나라로 

다시 돌아왔지만 반환된게 아니라 10년간 장기 임대하면서 국립 고궁박물관 

강화박물관 등지에 전시가 되었다. 최후까지 몸을 던져 장렬히 전사하며 외세의 

침입을 막겠다는 장수의 기개가 서려있는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서아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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