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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국가 '고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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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을 살리는 한방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 '고조선'

건국과 멸명까지의 역사를 알아봅시다.

고조선의 건국과 멸망

-단군조선에서 시작되어 위만조선으로-


역사인문산책_고조선.jpg

       사진출처: https://blog.naver.com/idontnowhy/220090123791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 고조선의 역사는 기원전 233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고조선의 건국 이야기는 
고려 시대 승려였던 일연이 쓴 ‘삼국유사’에 처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삼국유사에 나온 단군신화를 통해서 당시 고조선의 건국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최초의 국가 고조선의 탄생 배경
단군왕검의 이야기에서 고조선을 세운 환웅 부족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점을 보아 고조선은 세워진 땅에 원래부터 
살았던 사람들이 아니라 한반도 북쪽 지역의 이주민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해줍니다.
호랑이와 곰, 마늘과 쑥 이야기에서 부족 국가 간의 만남과 농경사회가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는데요. 
환웅 부족은 호랑이와 곰 두 부족 중에 곰 부족을 선택해서 연합했고 단군은 이 두 부족 지배자의 사이에서 태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단군에 의해서 세워진 고조선은 후에 기원전 4세기 중국의 연나라와 대립할 만큼 강력한 국가체제를 갖추게 되었고 
연나라에서 칭하는‘왕’을 고조선도 동시에 칭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기원전 3세기 후반부터 연나라가 동방으로 진출하면서 고조선은 밀리기 시작했고 연의 장수 진개가 쳐들어오면서 
서방 2000여 리의 영토를 상실하고 쇠퇴해지기 시작합니다.

위만에 의한 새로운 고조선 성립
기원전 3세기 고조선의 부왕이 죽고 아들 준왕이 즉위할 무렵, 진나라는 시황제가 죽으면서 15년 만에 물거품처럼 
사라지게 되고 유방에 의해 한나라가 세워지게 됩니다.
이때 중국의 정세는 매우 혼란스러웠는데 기원전 195년 연왕 노관이 한나라에 반기를 들고 흉노로 망명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연 지방은 큰 혼란에 휩싸이고 그곳에 살던 많은 사람이 고조선지역으로 망명을 하였습니다. 
이들 가운데 ‘위만’은 무리 1천 명을 이끌고 고조선에 들어오게 되고 위만은 준왕에게 자처해서 신하가 되길 청합니다. 
바로 이 위만에 의해 고조선은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됩니다. 

위만은 연 지방에 살던 고조선인으로 추정되는데 그가 고조선으로 들어올 때 상투를 틀고 흰옷을 입고 있었다고 합니다.
준왕은 위만을 신임하여 박사(지방관)라는 관직을 주고 서쪽 1백 리 땅을 통치하게 하는 한편, 변방의 수비 임무도 맡깁니다. 
위만은 기원전 194년 자신의 세력을 모아 중국 군대가 침입하여 온다는 허위 구실을 내세워 준왕을 몰아내고 왕이 됩니다. 
준왕은 한반도 남부로 가서 한 왕이 되었고 이때부터 ‘위만조선’이 시작됩니다.
위만은 왕이 되어서 유이민집단과 토착 고조선세력을 함께 지배체제에 참여시켜 양측의 갈등을 줄이고 정치적으로 안정을 도모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청동기 위주의 문화였던 고조선에 철기를 본격화시킵니다. 이로 인해 더욱 발달한 농기구로 인해 농업 생산량이 늘어나고 
자연스럽게 상업과 무역이 활발해지게 됩니다. 

위만조선의 멸망
위만에 의한 새로운 고조선은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면서 군사력도 강화되어 이를 기반으로 주변의 나라인 진번, 임둔을 복속시킵니다. 
그리고 위만의 손자인 우거왕 때에 가서는 지리적인 이점을 이용해 중국의 한나라와 한반도 남쪽의 진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무역 사이에서 
중계역할을 하면서 이익을 독점하게 됩니다. 이에 불만을 느끼게 된 한나라는 기원전 109년 육군과 수군 양쪽에 많은 군사를 이끌고 고조선으로 
쳐들어옵니다. 고조선은 총력을 다해 맞서 싸웠고 승리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한은 다시 고조선을 침략하였고 전쟁은 1년 동안 장기화가 되면서 
지배층에 내분이 생기게 됩니다. 끝까지 싸우자는 의견과 항복하자는 의견이 대립하는데 결국 기원전 108년 왕검성의 함락으로 멸망하며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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